[피어난 틈]
이진성
한지 작업의 매력은 밖으로부터 오는 다른 물성을 가득 품어 주기도 하고, 거친 닥나무의 결을 슬며시 들어내기도 하며, 때로는 바람까지도 머금는데 있다. 이런 특성을 지닌 재료로 도시풍경을 구현해온 권인경의 이번 소노아트sonoart 개인전 제목인 《피어난 틈(소노아트, 2022)》. 전시 제목으로써 이 이름이 갖는 의미는 여러가지 방법적인 ‘틈’을 작품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를 ‘틈’ 이라고 표현해도 좋고, ‘간극’ 이랄지 ‘사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작가의 전작들이 화면 구성에서 촘촘하고 단단하게 묶여진 형상들로 이미지들을 만들어 냈다면, 이번 개인전에서 보여주는 종이 부조 작품들은 화면에서 그림으로써 표현되는 공간감을 실재 공간에 올려 띄우는 방법(<불꽃놀이>, <봄날의 눈>, <새로운 조우> 등), 형상 안에서 서로 맞물려 반전되는 그림자를 포함한 구성(<너와 나 1~5> 등), 이미지들을 별도로 겹쳐서 제작한 부조작업(<새로운 조우1> 등), 또한 아크릴 위에 그림을 그려 붙이기도(<또 다른 만남> 등) 했다. 이렇듯 열거한 방법들로 작가는 작품에서 가시적인 공간의 개념을 물리적으로 새롭게 가져왔다.
위에 간략하게 열거한 여러가지 변화된 작품 구성들을 재료와 이미지로 나눠 살펴보자. 먼저 재료의 측면에서 보자면, 한지 위에 다른 한지를 붙이고 이로써 하나의 형상 안에서 다른 공간과 이질감을 표현해온 방식에 더해 권인경은 갤러리 전시장 위에 아크릴과 하드보드지로 작품을 직접 오려서 붙이고 있다. 평면회화의 바탕 화면이 곧 전시장의 하얀 벽면이 되었으며, 거기에 두께감 있게 컷팅된 재료에 색감을 더해 작품들을 완성한 것이다. 기존의 평면 회화 작품들이 붓으로 그려 표현되거나, 한지 꼴라쥬 기법을 통한 깊이감과 그림자 표현이 이번 전시 작품들에서는 실재하는 공간에 고스란히 드리워진 차이가 있다. 이점이 바로 두번째 측면인 이미지 구성 요소의 변화이기도 하다. 작품 <너와 나 1~5>, <불꽃놀이>, <봄날의 눈> 등을 보면 작가가 표현한 그림자는 작품 밖 세상으로 나와 있다. 전시장의 조명을 받고 말이다.
이외 작품들 가운데 흥미롭게도 <새로운 조우1(2022)> 는 대학시절 작가 본인이 판화시간에 프린트한 스스로가 만든 ‘덜 오래된 인쇄지’를 오리고 붙이고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재료는 자신의 어느 한때 과거의 시간을 담아 멈춰 있으며, 스스로가 제작한 재료를 가져와 사용했다. 여기에서 필자가 ‘덜 오래된 인쇄지’라 칭한 이유는 이전부터 작가가 사용한 고서화가 가진 시간성과 차별점을 주고자 해서 이다. 그러기에 이 작품은 사뭇 다른 감성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금번 전시 제목과 동일한 작품 시리즈 <피어난 틈>은 누렇게 세월을 머금은 책장 위에 먹으로 드로잉한 작품들이다. 꼼꼼하게 채색된 작품과는 다른 자유로운 붓 터치의 필치가 주는 향기가 있다. 마치 도서관의 장서 보관소에 들어가면 나는 독특한 쿰쿰한 내음과 좋은 먹으로 벼루 위에 슥슥 가느다란 소리를 내며 동그라미를 그리면 엷게 깔리며 나는 먹 냄새. 이런 내음이 날 것만 같은 작품들이다. 이 시리즈 제목 ‘피어난 틈’에서 작가는 왜 틈이 피어난다고 표현했을까. 굳이 틈에서 무언가가 피어나는 것일까. 사물과 사물의 사이, 무언가의 틈사이가 존재할 때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 존재를 단번에 알아채기 어렵다. 그 자체만으로 ‘틈’은 가치로 인정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틈’이 그 자체로 존재가 인식되기 위해서는 그 곳에 다른 무엇인가 얼마간의 자리를 차지했을 때에 비로소 굳건히 영역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어느 사이의 작은 영역을 일컫는 단어 ‘틈’. 오래된 불어 장서 위에 먹으로 드로잉한 <피어난 틈>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언어 위에 작가의 언어인 이미지를 투영해 전혀 다른 뜻을 전달하고 있다. 그러기에 여기에는 피어난 틈이 존재한다.
이와 같이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전시장 공간에 작품으로 오리고 붙인 하나의 커다란 꼴라쥬 작품을 제작했다. 권인경의 언어로 전시장에 틈을 피워낸 것이다. 작가의 앞으로 작업에서 여러 틈과 사이와 무수한 간극이 생겼다가 없어지는 과정을 고대해 본다.
- 권인경 개인전 _ 피어난 틈
- 화 ~ 토요일 : am11 ~ pm6
- 수요일(연장) : am11 ~ pm8
- 점심시간(문닫음) : 1:30 ~ 2:30
- 휴관 : 일요일, 월요일 및 공휴일
: 완연한 봄이 시작되기 전, 절기상으로는 봄이더라도 아직 바람은 춥게 느껴지는 3월입니다. 이런 날이면 도시의 회색빛 보도블록과 담장 사이 작은 틈 사이로 연둣빛의 새싹을 쉽사리 발견 합니다. 그 빛깔에서 우리는 비로소 긴 겨울이 지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그런 ‘틈’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온통 회색빛 도시 속에서 그런 ‘틈’이 있었음을 말이죠.
권인경 작가의 개인전 《피어난 틈》은 평면의 회화 작업을 해온 작가의 작품 재료인 한지의 물성을 넘어 공간에 이미지를 띄우는 새로운 시도들이 선보일 예정입니다. 작가는 정작 지금까지 해온 방향성으로 형상 작업들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하고 권인경의 작품 시리즈 제목이기도 한 <피어난 틈>은 겨울과 봄 사이의 틈, 평명과 입체 사이의 틈, 형상과 그림자 사이의 틈 등 다양한 틈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관람객들은 ‘틈’을 통해서 각자의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되는 전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