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_ 추억이 스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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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작가노트)

도시 속의 섬

 

몇 년 전 우연히 작업사진을 찍으러 간 곳이 매축지 마을 이었다. 굴다리를 지나고 철길을 건너서야 도착한 마을은 부산 시내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의 도시에 비해 너무도 오래된 동네의 풍경이 그랬고, 그곳에 가기까지의 여정이 그랬다. 마을 끝자락에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고층아파트 때문에 마을의 어느 지점에서도 공사 중인 거대한 회색빛 건물을 볼 수 있었고, 어떤 곳에서는 마을의 집들 위쪽으로 하늘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아파트가 다 차지하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이러한 대조적인 풍경에 이끌려 작업사진을 찍다가 이후에는 마을의 오래되고 소박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그렸다. 마을 곳곳에 그려진 벽화들과 안내판들이 처음에는 마을의 안전과 관광객을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졌겠지만 그것이 너무 오래되어 낡은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오래된 풍경이 언젠가는 쉽게 사라질 것을 알기에 마을을 추억할 수 있는 풍경을 그림으로 그렸다.

 

 

 

추억이 스민 풍경_ 이진성(소노아트)

 

어느 풍경에는 우리의 삶이 묻어 있고, 어느 것은 추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익숙한 듯 다른 이러한 일련의 모습들이 우리에게 주는 위안이 있다.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들어 맞는 그런 광경이 아니라, 닮은 듯 다르지만 익숙한 분위기와 뉘앙스에서 오는 편안한 위안이 되는 그런 이미지. 작가 김민정의 이번 전시 《추억이 스민 풍경》展 작품 <도시 속의 섬> 시리즈에서 보이는 풍경이 바로 그러한 위안의 장면들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이 이미지들은 쉽사리 작가의 기억에 기초한 옛 시절의 구연으로 읽힐지 모르지만, 사실 김민정이 표현한 장면 장면들은 부산의 매축지 마을의 실재하는 풍경이다. “매축지(埋築地)”는 ‘바닷가나 강가 등의 우묵한 곳을 메워서 뭍으로 만든 땅을 일컫는 말’로 부산의 초량천 하구에 형성된 마을을 부르는 명칭이며, 현재는 부산 동구 일부 지역에 속해 있다.
 동리 이곳 저곳의 모습들은 부산이라는 도시와 거리감 있는 삶의 흔적들이 쌓여 자아내는 생경함이 존재하고, 작가는 이 장소를 기록하듯이 그림 속에 담아 내고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은 삶을 느리게 살 것만 같은 이들과 화분을 나무처럼 키워내는 이들, 주인이 아니라도 누구나가 밥 주는 인심 속에서 찬찬히 동네를 누비는 길냥이들이 함께하는 마을이다. 나지막하고 빛바랜 원색의 지붕들이 즐비한 저 너머에 보이는 고층빌딩의 모습. 점점 더 높아만 가다가 이내 이곳에서 바라다 보는 스카이라인을 바꿔놓고야 마는 고층아파트. 이 모습들을 그린 수채화 작품 시리즈의 제목이 ‘도시 속의 섬’ 인 것이다. 거대한 빌딩들과 분주한 인파들이 연상되는 부산이라는 도시, 그 도시 속에 매축지 마을은 일종의 섬과 같은 존재로 보인다. 도시 안에 자리 잡고 있기는 하지만 왠지 그 안에 부유하는 듯한 존재감, 그런 연유로 작가는 이 마을을 일종의 섬에 비유 했으리라.
 매축지 마을을 익히 알고 있는 이가 보건, 그곳을 모르는 이가 보던지 간에 <도시 속의 섬> 작품들을 바라보면, 보는 이의 개인적인 추억에 기인한 심상이 투영된 그림 너머의 이미지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누구나의 기억과 맥이 닿는 풍경이 작품에 함께 중첩된다.  한번 쯤은 마주했을 법한 그런 도시의 모습을 작가는 따듯한 시선을 담아 담담하게 그리고 맑디 맑게도 기록하듯이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지니고 있을 법한 추억이 스며든 이미지로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전 작가의 작품들은 공사장 풍경을 주된 모티브로 사용했으며, 이번 전시에서 등장하는 수채화 기법이 아니라 캔버스에 유화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번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맑은 수채화 기법으로 종이에 작업을 진행했다. 이런 방법의 전환은 주제와 잘 부합하여 어울리게 표현된 것을 볼 수 있다. 유화 작업을 하면서도 스케치의 일환으로 수채화를 병행했던 터라, 김민정에게 이 기법은 생경하거나 낯선 일탈은 아니었다.
 긴 터널을 지나 빛이 내리쬐는 끝자락에 눈부시게 보이는 낡은 상가, 무너져 내려간 담벼락 위에 밥 먹는 길냥이, 저 멀리 고층 아파트와 오래된 상가들이 나란히 보이는 모습. 시멘트 벽돌과 재래식 화장실의 문, 그사이 새싹을 튀운 초록 잎사귀. 이와 같은 다른 두 가지의 감성들이 공존하는 곳. 작가의 시선은 이런 광경을 읽어 내고 있다. 김민정이 포착한 작품 속 순간들이 저마다 추억을 내밀하게 혹은 살포시  다시금 소환해 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풍경 자체에 스며 있는 상이함과 그 상이함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의 공존이 보여주는 따스함이 베어 있기에 가능한 일 일것이다. 매축지 풍경은 화선지에 먹물이 오랜 시간 찬찬히 스며 드는 것 처럼 그렇게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지난 시간들을 담고 있다.
 작가 김민정이 구연한 작품 속 동네는 그런 곳이다. 도시 속의 섬으로 존재하는 매축지 마을을 작가는 추억이 스민 모습으로 기록했다. 이 마을이 지닌 독특한 채취에 그의 따스한 시선이 더해서 드려내는 이미지, 따스하기에 가능한 그 안에서 오늘 우리는 옛 추억을 들춰내어 본다. 아련하게 남아 있는 저마다의 기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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