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보 Shim Kyungbo _ made in KOREA
“한국에서 만들어진 고품격 제품입니다_ Made in KOREA”
바느질 기법으로 상품 태그(tag)를 이용해 작업하는 심경보 작가는 이번 개인전 《made in KOREA》展에서 <가난한 이의 의복Clothes of the poor man> 시리즈 작품들과 구두 드로잉을 선보인다. 지난 2017년 개인전 《구둣빨》展에서 작가는 실재로 착상이 가능한 남녀 정장구두와 대형 여성 하이힐을 제작한 바 있다. 물론 착용만 가능하고 신고 걸을 수는 없었지만, 이러한 형태의 구두 작품들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상하의 입체로 표현되어 마치 여성의 갑옷과도 같은 의상 작품이 있는가 하면, 부조 형태로 벽에 박제를 걸어 놓는 듯한 느낌의 작품이 있었다. 이 부조 작품들은 더 이상 생명력을 지니지 못했으나 한때 찬란했음을 증거로 남기고자 하는 기념비적 성격이 강조되는 시리즈였다. 그리고 작가는 그 이전에 투명 비닐을 이용한 속이 보이는 형태의 남녀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었다. 이미 필자는 작가가 사용하는 상품 태그의 의미에 대해, “… 그 자체만으로 존재 가치가 없는 무의미한 종이에 불가하지만 그와 함께 수반하는 물건의 가치에 따라 한때 동일한 평가를 구가한다…’라고 이전 전시글(구둣빨전 전시글, 2017, 소노아트)에서 이야기 한 바 있다. 이는 태그가 주는 작품 재료 측면에서 주목한 설명이었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작가가 표현하는 의상에서 읽혀지는 이미지, 즉 여전사적 이미지에 대해 주목해 보고자 한다.
금번 전시 《made in KOREA》展에서 심경보가 제작한 <가난한 이의 의복Clothes of the poor man> 시리즈와 <가난한 이를 위한 기념비>는 지금까지 작가가 보여준 섬세함의 최대치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선 작품이 놓인 좌대를 한번 보자. 이 좌대는 고작 성인의 발걸음으로 한 발치 정도의 계단 높이 보다도 낮다. 그런 좌대의 가장자리에는 그리스 신전의 기둥 장식에서 봤을 법한 덩굴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렇게 쓰여 있다. ‘Clothes of the poor man’. 그리스 신전의 석판 위에는 간혹 그 신전의 주인인 황제들의 이름이 새겨지거나 건축 당시 기리고자 하는 신들의 이름이 함께 새겨지는 경우들이 있다. 마치 엄청난 기념비적인 성격을 부여 받은 듯한 좌대다. 그렇다면 이런 기념비적 성격으로 떠 받들고 있는 작품을 살펴보자. 작가가 구연하고 있는 완벽하고 정교한 짜임새의 표현. 작품을 실재로 본다면 작품에서 들어난 장식적인 효과나 전사적인 구도, 마치 갑옷과도 같은 가운의 형태는 상상 속에서나 등장 할 법한 여전사의 모습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화려하고 여성적이면서도 강인한 풍모가 연상되는 전투사의 의상으로 말이다. <가난한 이의 의복Clothes of the poor man>은 절대로 가난한 사람은 입을 수 없는 옷 처럼 보인다. 화려한 장식과 노동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 형태, 하다못해 외출복 이라고 여긴다 할지라도 어느 가난한 사람이 입겠는가. 그렇다면 단순히 부유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인가? 이 역시 그렇지는 않다. 부유해 보이고 싶은 가난한 사람들의 옷 인 게다. 정작 그들 조차 입을 수 없는 옷 말이다.
작품 <Clothes of the poor man-n2 2019> <Clothes of the poor man-n1 2019>에서 이전과 다르게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표현은 여성성의 강조에 있다. 더욱 도드라지는 가슴의 형태는 훨씬 크고, 허리에서 엉덩이로 내려오는 곡선의 라인은 아찔하다 느낄 정도로 곡선이 강조된 표현을 하고 있다. 이렇듯 강조된 여성성과 대조되게도 주목할 부분은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여성, 이 옷의 주인인 그녀의 이미지가 수동적이고 가녀린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심경보가 드러내는 이들 여성은 남성 만큼이나 다부진 체격, 마치 전장을 누빌 듯한 자세의 어깨 망토를 지녔다. 여성의 의상임이 강조되어 있으면서도 이 옷을 보고 파티나 격식을 차리고 가기 위한 자리의 의상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작품에서 보이는 여전사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심경보의 작품은 다른 반대급부가 존재한다. 너무나 장식적으로 화려하지만 실은 조악한 보석과 장식들이 가득하고, 여성성이 강조되지만 실은 전투적인 이미지가 아닌가. 이러한 형상들을 만들어내는 방법적인 행위 역시 바느질이라는 지극히 여성적인 생활 수단에서 비롯된 기법으로써 이를 작업의 방식으로 선택해서 작업에 임한다. 작가의 손을 통해서 탄생된 이미지는 우리가 보아 온 것과 같이 아름다운 전투복이라는 아이러니. 그리고 가난한 이의 의복 이라 함은 부유해 지고 푼 이들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한국에서 만들어진 고품격 제품’ 이라는 이번 전시 부제에서 우리는 한국에서 생산되는 소비재들이 고품격인가 생각해보자. 상대적으로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되는 베트남이나 중국산 제품들에 비해 한국의 소비재들은 그럴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비교 대상이 어디냐에 따라, 예컨대 영국이나 프랑스, 이태리에서 생산 되는 소비재와 비교한다면 이 문장은 우스갯소리가 되고 만다.
작가가 표현하는 여전사는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자 필자의 모습이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네 동료들의 모습이 투영된다. 이 작품들에서 우리 어머니들의 지고 지순한 순종적이며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는 모습, 감내해야 할 것들이 많은 인생사를 지닌 여성이 그려지지는 않는다. 작품 속 여성은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는 혼란한 시기와 구분이 모호해 지는 시기 교육과 사회 진출을 하고 자기 개성과 주장을 펼치고 남다른 삶의 주인공이고자 노력한 흔적으로 다가온다. 지금도 싸워가고 있는 우리 속 여전사의 모습으로 말이다.
이진성(소노아트)
심경보, 2018 sketch-Attention, 혼합재료, 30 X 40cm, 2018
심경보, 2018 sketch-Bobbi Brown, 혼합재료, 30 X 40cm, 2018
심경보, Clothes of the poor man - n2 2019, 혼합재료, 65 X 55 X 165cm, 2019
심경보, 가난한 자를 위한 기념비 2 2018, 혼합재료, 30 X 50 X 60(H)cm, 2019
심경보, Clothes of the poor man - n1 2019, 혼합재료, 65 X 55 X 165cm, 2019
심경보, 2018 sketch-Paris Fashion, 혼합재료, 30 X 40cm, 2018
심경보, 2018 sketch-Pierre Cardin, 혼합재료, 30 X 40cm, 2018
심경보, 2018 sketch-WOX, 혼합재료, 30 X 40cm,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