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사과 _ 윤두진 展
신화와 성서가 전하는 ‘황금사과’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체적으로 실존하는 대상으로써 ‘황금사과’ 자체가 주는 명예와 권력을 쫓고 있다. 물론 이것이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금으로 된 사과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과일을 지칭한다거나, 아니면 상징적인 대상일 뿐 실재의 것은 아니라는 등의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하고 디테일한 분석적인 해석 보다는 다양한 곳에서 ‘황금사과’라고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금단의 열매였으며, 또 어디에서는 최고의 미녀를 상징하기도 하였으며, 무수한 권력과 힘의 상징이었다는데 있다. 작가 윤두진의 작품 제목 <엘리시움Elysium>은 바로 그러한 지점에 대한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내가 지닌 나의 본질은 드러나기 쉽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혹은 오랜 시간을 요하기도 할 것이며,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지녔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 다수의 인간들이 꿈꾸는 욕망이라는 것은 돈, 명예, 지위, 출세, 외모 등으로 대변된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 욕망에 대한 이야기, 그것이 바로 작가가 드러내고 싶은 이상향(Elysium)의 덧없음과 본질을 감춘 외형적인 껍데기와 같은 외피의 허망함을 담고 있다. 마치 글의 서두에서 예로 들었던 다수의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결국에는 ‘황금사과’로 인한 아름다운 결말이 아니라, 그것을 욕망하는 이의 질투의 과정이 있으며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하며 누군가는 또 이를 위해 이득을 얻고 있다.
윤두진은 플라스틱 소재로 디테일한 부조와 입체작업들을 한다. 작가가 표현하는 인체의 표현들은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극대화된 미(美)를 드러낸다. 실재 사람의 모습에서 표현들을 가져오면서도 형태들은 마치 그리스 신전의 여신들을 드러내듯, 르네상스 성화가 드러내는 여인들의 형상들과 흡사하다. 물론 여성의 표현 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인체 표현 역시 그러하다. 이런 인체들의 이미지들은 때로는 갑옷이나 투구 처럼 표현된 가면과도 같은 형태로 얼굴을 가지거나 과장된 팔, 다리를 지니고 있다. 마치 무쇠와도 같은 형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비율의 인체를 한 인물이 게다가 철갑과 같은 것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다니. 21세기 AI가 평범한 인간상을 흠모해서 닮아 가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이미지가 아닐 수 없다.
작가가 표현한 인간상 이외의 건축적인 구조물들의 표현은 지극히 사실적인 옛것들을 모방하고 있다. 이는 마치 이 모든 형상화된 이미지들이 사실은 신화와 신들이 존재하던 그 옛날의 실존했던 것 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존재 했음직한 형상의 이미지들 이지만 그러하지 못했음을. 우리 눈에 완벽에 가까워 보이는 작품 속 인체 표현들 마져도 실재하기 어렵다는 것을.
결국 이상향은 이상향 일뿐. 바라고 고대하지만 우리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상향이 아닐까. 누구나가 꿈꾸는 욕망은 지금 없는 것을 원하는 것 일게다. 그것이 권력이 되었건 부가 되었건 무엇이건 간에 남들보다 우위에 있고자 하는 허영이 만들어 내는 갈구 가 아닐까. 물론 이를 생산적인 발전을 위해서 표출할 수도 있으며, 탐욕적인 모습으로 드러낼 수도 있다. 작가 윤두진이 드려낸 이상향(엘리시움,Elysium)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물론 작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거니와, 필자의 것이며 관람자 누구나의 것이다. 이를 위한 나는 어떤 과정을 걷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욕망과 탐욕은 같은 듯 다른 결을 보인다. 우리가 욕망하는 무엇가가 결코 탐욕스럽지 않은 오늘을 사는 각자를 만들길 바란다. 그것이 나와 당신의 엘리시움.
이진성(소노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