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예신 <행복 볶음 레시피>, Pen, Water color on paper, 19 X 14cm, 2014
이진성(소노아트컴퍼니)
토끼와 소녀, 그리고 고양이.
이들은 작가 강예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이다. 처음 작품을 접하게 되면 소녀가 작가의 분신일까, 혹은 토끼일까, 아니면 고양이? 이러한 질문들을 품고 작품을 보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들 셋은 다 작가의 모습이다. 각기 공통된 하나의 역할이기보다는 각자가 마치 작가의 분화된 모습들을 채우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그렇게 작품 속에서 녹아져 있다.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의 모습들이 내재되어 있듯이 말이다.
작가의 주제들은 대체로 본인의 경험담에서 그 모티브를 가져왔다. 그렇게 빈 공간들에서도 여운들을 드리우고 있다. 그래서 작가 강예신이 쓴 책 『한뼘한뼘』(예담, 2014)의 일부 삽화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 《행복 볶음 레시피》展 드로잉 작품들에서도 그래서 뭔지 모를 애잔함이 일렁인다. <구겨진 마음을 다려드립니다>처럼 관찰자의 꼬깃꼬깃 구겨지고 잔주름 투성이의 마음을 다리미 앞에 서 있는 소녀가 깔끔하게 다려줄 것만 같은, 파마 롤을 머리에 말고 미용실 의자에 앉아 두꺼운 잡지를 보며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기분전환>, 행복해지는 음식에 대한 따뜻한 상상을 마주보게 하는 <행복 볶음 레시피> 등과 같이 관찰자에게 끊임없이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고, 동무가 되어 주려고 하는 게 그녀의 작품들이다. 이러한 장면들이 목도 되면서도 동시에 본인 스스로 위로와 치유의 시간들을 갖고 있는 게 또한 강예신이다. 위로와 유모의 코드를 함께하는 모습은 작가의 실재 모습과도 많이 닮아있다. 물론 작가들은 작품과 작가 본연의 모습들이 닮아 있기 마련이다. 단지 그것이 표면으로 들어나는지 혹은 내면적으로 숨겨져 있던지, 약간만 슬쩍 보이던지의 차이일 뿐이다.
스스로의 치유 과정을 작품에 담아, 외로운 누군가의 마음을 보듬을 채비가 끝났다. 그런 작품에서 무언지 모를 애잔하고 심심한 쓸쓸함이 묻어나는 건 아마도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이미지들 사이사이에 느껴지는 숨겨질 수 없는 외로움 아닐까. 생각컨대, 이러한 비애는 감출 수 있는 게 아닌게다.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새치나 눈가의 주름 마냥, 자연스러운 섭리 같은 거지 싶다. 그래서 작가가 건네는 위로가 더 마음을 두드린다. 더 슬프게도 마음 속에서 약하디 약한 숨을 내쉬게 한다.
오늘도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우리에게 말을 건다, 관찰자에 말을 건넨다. 안녕하셨냐고. 어제 안녕했듯이, 오늘도 잘 지내냐고. 아마 내일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안부를 묻는다. 그 안부는 물음이기 보다는 감탄의 의미를 지닌다.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안녕, 하세요!’. 어제의 힘든 외로움과 무기력과 서러움을 지나온 당신에게 잘 지내왔다고 안부를 묻고, 오늘 지친 내 어깨에 손을 얹어주고, 내일 어떤 어려움이 와도 괜찮을 거라고 그렇게 ‘안녕하세요’를 읊조린다. 그래서 작가는 속삭인다, ‘안녕, 하세요!’라고.